비운의 낭만 컴퓨터 – NeXTCube

필자 주) 이 글은 예전 블로그에 2004년 3월 9일에 쓴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정육면체의 검은색 몸체를 가진, 80년대 후반 ~ 90년대 초반의 꿈의 컴퓨터, NeXTCube입니다. 멋지지 않나요? 본체와 모니터 뿐 아니라 시리즈로 팔리는 레이저 프린터(요새는 레이저 프린터가 개인도 쓸 정도로 대중화된 프린터이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들은 지금은 보기도 힘든 9핀 도트 매트릭스 프린터라도 있으면 정말 호화로운 장비의 소유자였답니다. 그러니 레이저 프린터는 가공할만한 꿈의 프린터였죠)까지도 검은 색으로 통일한, 디자인 측면에서 보아도 보석 같이 빛났던 컴퓨터입니다(실제 가격도 당시 달러로 1만 달러가 넘었다 함).

이것을 만든 회사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NeXT라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설립자는 현재 애플컴퓨터의 CEO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입니다. 1980년도에 애플은 존 스컬리(X파일의 스컬리와 무관함. 이사람은 남자입니다 ^^)라는 경영 전문가를 영입합니다. 그런데 이 존 스컬리는 애플의 실적 부진을 이유 삼아 ‘합법적으로’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를 쫓아냅니다(마치 국회가 ‘합법적으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생각나네요). 돈만 아는 경영 전문가와 당시 ‘꿈의 기계’를 만들 생각만 하는 낭만적인 기술장이 출신인 스티브 잡스가 사사건건 부딪히다, 결국 정치에서 스티브 잡스가 진 거죠, 뭐. 여담입니다만, 이 존 스컬리도 ‘뉴튼(Newton)’이라는 PDA(이 뉴튼이 바로 PDA라는 개념을 만든 물건입니다. 이것이 있어서 팜파일럿도 나오고 포켓PC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뉴튼 디자인도 정말 죽입니다. 역시 애플의 디자인 감각은 크~)에 올인했다가 뉴튼의 판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쫓겨납니다(선각자의 비애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 다음 마이클 스핀들러, 길버트 아멜리오라는 차례대로 CEO로 왔다가 쫓겨나고 다시 스티브 잡스를 임시 CEO(Interim CEO)로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좀 있다가 다시 하죠. 아무튼 스티브 잡스는 그래도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애플에서 잘린 다음 NeXT사를 설립하고 꿈의 기계를 만들겠다고 작심합니다.

아까도 말했듯 당시의 스티브 잡스는 꿈의 기계를 만들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값 생각은 안하고 그야말로 초호화판 기계를 만듭니다(당시 레이저 프린터가 무지막지하게 비싼 물건이라는 것은 말씀드렸죠? 이런 레이저 프린터를 기본 프린터로 턱하고 채용할 정도였으니 가격 생각은 정말 눈꼽만큼도 안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NeXTCube입니다. 저는 이것을 1988년도 ‘월간 과학’이라는 과학 잡지에서 사진으로 봤는데(당시 중학교 2학년), 보자마자 뻑이 갔죠. 디자인도 디자인이려니와 당시 개인용 컴퓨터로는 엄청난 성능~ 크~.

그러나 이 컴퓨터의 진가는 하드웨어의 성능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NeXTCube를 쓰도록 사람들을 유혹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이 NeXTCube의 운영체제 NEXTSTEP이었습니다(NEXTSTEP을 쓰기 위하여 NeXTCube를 쓴다는 말이 정말로 있었습니다). BSD UNIX를 기반으로 하여 NeXT사가 손을 본 NeXTCube 전용 운영체제였는데, 지금 봐도 그 시절에 이런 것을 구현해 냈다는 것에 경탄할 정도로 진보적인 기술들이 녹아 있는 운영체제였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DO(Distributed Object)라는 것인데, 이것은 한 때 컴퓨터 업계를 뒤흔들었던 분산 객체 기술입니다. CORBA, EJB, DCOM 같은 분산 객체 기술이 2000년대 초에 들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미 10여 년 전에 나온 운영체제에서 분산 객체 기술을 구현했다는 것에는 정말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습니다(이 운영체제가 나올 당시 PC용 운영 환경으로 MS가 내놓은 것이 윈도우 3.0 이전 버전이었을 겁니다. 그것을 대비시킨다면 정말 경악할만한 기술력이죠). GUI도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는데 화면 자체를 포스트스크립트(Postscript)를 쓴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Display Postscript)를 써서, 완벽한 WYSIWYG을 구현했으며 그 당시 PC들이 256 컬러 가지고 경악한 시절에 요즈음의 트루 컬러에 가까운 색을 내는 엄청난 물건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NEXTSTEP의 UI는 다른 운영체제의 전범이 될 정도로 직관적이고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우수한 것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 법. 시장에서는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가격으로 1만 달러가 넘는 높은 가격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컴퓨터를 만들면서 교육용 시장을 겨냥했으나 교육용 시장은 애플의 매킨토시 벽을 넘는데 실패했고(미국 이야기입니다),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으로 팔기에는 프로세싱 파워가 썬이나 아폴로(HP에 흡수된 지 꽤 되었죠)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에 비해 딸린 편이면서도(모토롤라 MC68000 계열의 CPU를 썼는데 썬이나 아폴로의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의 RISC CPU보다는 프로세싱 파워가 딸리긴 했습니다) 값은 비쌌죠. 즉 값은 비싼데 성능이 약간 어정쩡해서 연구소 같은 곳에 조금 파는 정도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결국 NeXT사는 일본 캐논의 지분 참여로 근근히 버티다, 결국 하드웨어 사업은 일본 캐논에 팔아버리고, NEXTSTEP 판매에만 주력하기로 합니다. 즉, MS 같은 운영체제 전문 회사로 돌아선 것이죠. 그리고 NEXTSTEP을 인텔 CPU에도 포팅합니다. 제가 대학 2학년 때였나요, 당시 한국에서도 신명시스템즈(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라는 회사가 이 인텔 CPU용 NEXTSTEP을 팔았었습니다. 컴퓨터 전문지도 상당히 비중있게 이 사실을 다루었었고요. 제가 다니던 학교에도 신명시스템즈 사람들이 와서 세미나 하고 홍보하고 그랬었고, 그 덕에 저도 당시 꿈의 PC였던 펜티엄(펜티엄 2도 아니고 펜티엄 3도 아닌 펜티엄)에서 돌아가는 아름다운 NEXTSTEP을 침 질질 흘리며 구경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당시 신명시스템즈는 NEXTSTEP의 완벽한 화면 출력 기능을 무기로 하여 DTP 시장을 파고들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킨토시가 해당 분야를 꽉 잡고 있긴 했지만 NEXTSTEP은 PC에서 도는 운영체제라는 것을 강점으로 생각한 것이겠죠. 그리고 당시 그 비싼 펜티엄 PC를 사서 NEXTSTEP을 돌린 동기 녀석이 있었는데, 친구들의 부러움을 상당히 받았더랬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선 탓에 당시 일반적 PC 사양보다 더한 사양을 요구한 NEXTSTEP은 시장에서 실패했고 이에 스티브 잡스는 다시 한 번 재주를 넘습니다. 바로 OPENSTEP이죠. 옆의 OPENSTEP 로고를 잘 살펴보시죠. OPENSTEP 및에 ‘FOR WINDOWS’라는 문구가 보이시나요? 네, OPENSTEP은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Windows NT나 Solaris 같은 운영체제 위에서 해당 운영체제에서 NEXTSTEP의 진보적인 데스크탑 환경을 구현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당시 많은 이들이 NEXTSTEP의 진보적 데스크탑 환경에 너무도 매료되었기 때문에 이 전략은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죠. GNUSTEP이나 AFTERSTEP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NEXTSTEP의 진보적 데스크탑 환경에 매료된 오픈소스 개발자들이 리눅스 환경에서 돌아가는 OPENSTEP을 만들어 보자고 나서서 시작한 프로젝트죠. 그만큼 NEXTSTEP은 많은 전산장이들을 매료시켰습니다.

아울러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이 OPENSTEP을 발표하면서 NeXT사는 또 하나의 혁신적 제품을 출시하는데 바로 ‘WebObject’라는 제품입니다. 그당시에는 이 제품이 무슨 용도인지를 알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은 바로 요새 말 많은 Web Application Server(이하 WAS)였더군요. 요사의 WAS의 표준처럼 되어 있는 J2EE 기반은 아니지만, OPENSTEP의 객체 기술을 이용하여 90년대 중, 후반에 이미 NeXT사는 WAS를 내놓은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견지명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WebObject는 바로 NeXT사가 OPENSTEP을 기업용 시장에도 진출시키겠다는 전략의 표현인 셈이죠. 그리고 이 WebObject는 현재 애플이 계속 출시하여 애플이 노리는 기업용 시장 진출 중 소프트웨어 분야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현재 기업용 시장 진출의 하드웨어쪽 첨병은 XServe라는 제품).

그러다 애플이 NeXT사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Interim CEO) 역할을 맡게 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애플은 시대에 뒤떨어진 MacOS를 대체할 새로운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개발 중이었는데 IBM과 합작으로 코드명 ‘Pink’라는 프로젝트도 하고 ‘Taligent’라는 코드명의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도 수행했지만 모두 실패합니다. 새 운영체제를 개발해야 하는데 시간이 모자란 애플은 당시에 출시된 운영체제를 인수하기로 하고 바로 NeXT사의 NEXTSTEP과, 애플 출신 프랑스계 미국인 ‘장 루이 가제’가 세운 ‘Be’사의 ‘BeBox’라는 하드웨어용 운영체제 ‘BeOS’를 놓고 저울질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완성도가 더 높은 NEXTSTEP을 사기로 하죠. 이 일은 애플이 NEXTSTEP이라는 대단한 운영체제의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는 것과, 자신이 설립한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임시기는 하지만 다시 애플의 CEO가 된다는(현재는 정식 CEO임) 드라마틱한 요소까지 곁들여져 컴퓨터 업계의 대단한 이슈 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애플은 MacOS와 NEXTSTEP을 결합하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킵니다(그 당시 컴퓨터 잡지 좀 보신 분들은 ‘Copland’, ‘Rhapsody’라는 이름을 꽤 보셨을 듯 싶습니다. 모두 이들 프로젝트에 관한 코드명이었죠). 그리고 태어난 것이 바로 MacOS X입니다. MacOS X의 API 중 Cocoa라는 것이 있는데 이 Cocoa는 Objective-C라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데, 바로 이 Cocoa가 NEXTSTEP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MacOS X에는 옛날 MacOS 버전에는 있지도 않은 UNIX 터미널이 있는데 이는 NEXTSTEP이 BSD UNIX를 기초로 하는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사실 MacOS X은 기존 MacOS의 후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NEXTSTEP의 후계자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습니다.

1999년에 NeXT 기계를 우연히 본 적이 있습니다(IBM PC에서 NeXTSTEP이 돌아가는 것이 아닌 진짜 NeXT 기계). NeXTCube는 아니고 NeXTStation이었는데(왼쪽 사진) 대학 4학년 때 교양으로 수학을 들었었거든요? 그 교양 수학 가르치는 교수님 연구실에 들를 일이 있었는데 그 연구실에서 NeXTStation을 보았죠. 1999년 말이었는데 아직도 그 NeXT 기계에서 각종 수학 관련 프로그램을 돌리시더군요. 하드웨어 생산이 중단되어도 한참 전에 중단된, 20세기 컴퓨팅 기술 진보의 상징이었던 기계를 21세기를 코 앞에 둔 세기말에 보니 감회가 정말 새로왔습니다(그 교수님 아직도 그 기계 쓸라나 몰라). ‘오우, 교수님, NeXT 쓰시네요?’ 하면서 이유없이 반가와했더랬죠. ‘네가 NeXT를 알아? 이거 나올 때 넌 중고등학생이었 터인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엮인 글은 WWW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에 대한 글인데,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WWW이 최초로 구현된 컴퓨터가 바로 NeXTCube였습니다. 만약 당시에 팀 버너스 리가 NeXTCube를 쓸 수 없었다면 아마 WWW은 한참 뒤에나 발명되었을 것입니다. 당시 GUI도 희귀한 시절에, 팀 버너스 리가 명령행 프롬프트나 깜빡거리는 컴퓨터를 썼다거나 후져빠진 윈도우 3.0도 아니던 시절의 윈도우, 혹은 프로그래밍하기 엄청 어려운 X Window(당시엔 GTK+나 QT 같은 것이 아닌 Xlib을 가지고 직접 X Window용 프로그램을 짰던 것을 기억하세요)를 접했다면 제 생각엔 절대 WWW을 발명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써 놓고 보니 NeXTCube 이야기보다는 NEXTSTEP 이야기를 더 한 것 같네요. 어찌 되었던 비록 시장에서는 실패한 하드웨어였지만, 이렇게 우연히 NeXTCube는 자신의 진보적인 기능 덕택에 WWW의 자궁 역할을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래서 참 재미있습니다. 하핫!

cf) NeXT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http://en.wikipedia.org/wiki/NeXT을 참고하세요. 영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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